환경보호기업<그린 플래닛> 회장 도미닉 그린은 사실은 부패한 정치가들과 결탁하여 각종 음모를 꾸미는 모리배. 그리고 비밀조직 <퀀텀>의 앞잡이이기도 하다. <퀀텀>의 조직원이 MI6 내부에까지 파고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전작에서 살해된 베스퍼에 대한 복수심이 아직 남아 있는 본드는 도미닉의 뒤를 부지런히 좇는다. 그 결과 도미닉이 볼리비아의 쿠데타 모의를 지원하는 대신 수자원을 장악하려고 하는 음모가 밝혀지는데...아직까지도 MI6보다는 스메르쉬의 첩자 쪽이 어울려 보이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뉴 본드. 그러나 전작인 카지노 로열과 비교해서 이번에는 촌티와 땟국을 싹 벗었다. 전작에서 방향없이 그저 이리 부딪고 저리 부딪던 어설픔이 싹 사라지고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자신이 상황을 장악하고 주도하는 노련미를 보여준다. 이래야 본드다. 누가 본드 역에 발탁되어도 '원작대로'를 항상 언급하지만 본인이 그간 봐 온 본드 중에서 가장 원작 소설의 캐릭터에 가까운 본드가 탄생한 듯 하다. 물론 시리즈로서의 '정통성' 면에서는 아직 모자람이 있지만 그것은 몇 차례 횟수를 거듭하면서 채워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본드 한 사람만 놓고 봤을 때 백점 만점에 팔십육점까지는 거뜬히 줄 수 있을 듯. M도 전작과 달리 상당히 많은 활동을 해 주고 있다 (그저 본드의 뒤처리일 뿐이지만...). Q와 머니페니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지만 차기작부터는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듯 싶다. 문제는 본드걸인데... 섹시하지 않다거나 뭐 그런 문제가 아니라 거의 활동이 없다. 물론 본드와 함께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지만, 그저 곁다리로 끼어 있을 뿐이다. 그녀 개인의 움직임과 본드 개인의 움직임이라는 궤적이 가끔 겹칠 뿐이다. 하기는 왕년의 '매리 굿나잇'도 왜 나왔는지 모를 역할이긴 했었지. 또 하나의 문제점은 펠릭스 라이터인데... 마이클 윌슨 나리, 당신 라이터 안티인거요? 이거 원, 비운의 괴작인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의 버니 캐시 쪽이 차라리 낫겠네. 흑인이라는 것 때문에 뭐라 하는 게 아니고 (그것만이라면 참지), 왜 이리 삭혀 버렸냐 이 말이오. '선더볼 작전'같은 것이라도 다시 한 번 보소. 간청이오. 반면 007을 처음 맡아 보는 마크 포스터 감독은 굉장히 많은 것을 연구한 티가 대놓고 팍팍 나서 감동. 하긴 처음 맡는 거니까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지.
* 유감스럽게도 '본드, 제임스 본드'가 이번에는 안 나왔다. 그러나 본작은 전작과 어차피 이어지는 작품이고, 마지막 부분에 그 유명한 총구 겨냥 장면이 나왔으므로 봐주기로 하자. 제일 처음에 나왔어야 할 총구 장면이 제일 마지막 순간에 나온다는 것은 아주 의미가 깊다. 장대한 프롤로그가 끝나고 이제부터 '007 제임스 본드'가 진짜로 스타트를 끊는다는 것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 3부작 설의 진위가 어찌되었건 간에 차기작은 가장 밸런스가 적절히 잡힌 본드 영화를 보여줄 것으로 매우 기대가 가는 바이다.
* 자막은... 나같은 생 초짜가 보아도 군데 군데 대충 넘어간 게 꽤 많더라.
* 나중에 더빙을 하게 된다면 박기량씨가 제일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 MGM의 사자가 울부짖은 뒤 소니-컬럼비아 영화사 마크가 뜨는 것을 처음 본 게 아님에도 역시 옆구리가 좀 쑤신다. 본드 덕후라면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와 소니 사 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익히 알고 있을 터이니 군말은 안하겠지만, 이제 다 집어 삼켰으면 스펙터와 브로펠드를 내놓으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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